책과 독서

그러니까 이 판타지/무협은 말이지 (7)

UVRT 2014. 2. 28. 10:33

2013년 1월 ~2014년 2월


1. 녹림상인


음... 뭐랄까. 상인인 부분이 어디에 있는거야? 라고 묻고 싶은 전개라고 할까. 그 전에 녹림은 또 어디붙어 있어? 라고 따로 물어보고 싶기도 하고. 무협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클리세 중에 가장 이해할듯하면서도 애매한 클리세인 '진정으로 괜찮은 사람의 마력적인 정면돌파 해결법'이 전체를 지배한다. 뭐, 까놓고 말하자면 진남불용청(眞男不用靑, 진정한 남자는 매직 더 개더링에서 청덱을 쓰지 않는다.)과 비슷하긴 한데... 이게 엄청나게 남자중심적인 마초적 해결법에 가까워서 세련되게 쓰지 않으면 굉장히 글 전체가 대충 넘어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그리고 이 책 또한, 세련되게 쓰진 못했다.

2. 팔존팔마

6권 중반까지 팔존팔마 엄청 띄워주다가 팔마를 약 10여페이지만에 없에버린다. 그리고 팔존도 대충 뭐 남은 기간에 뚝딱 때려죽이는데 결국 렙업은 치트가 정답입니다, 라는 소리를 하는 것 같고 수라검왕에 대한 호칭이 검마랬다가 검왕이랬다가 왔다 갔다 거리는데 문제는 검마는 이미 혼자 존재하질 않나, 팔존팔마의 숨겨진 복선은 대충 2페이지만에 나왔다가 광속으로 회수되고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 분위기가 되는데 아무리봐도 6권 말엽에 걍 완결내라는 출판사의 압박을 무지하게 받은 거 같은 기분 밖에 안 든다. 작가는 아마 10~12권 정도 쓰고 싶었던 것 같은 스토리 라인인데 5권까지 좋다가 6권에서 대충 날림공사해버린 점이 최악이다.

3. 마도십병

간만에 만난 그나마 떡밥을 제대로 회수하는 작품. 마지막에 허겁지겁 해결하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용납할 수 있는 범위였다. 그런데 궁귀검신 작가였구나. 궁귀검신도 초반에 연재할 때는 참 좋아하던 소설이었는데 후반으로 넘어 갈수록 병신이 되어가는게 안타까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구만. 그래도 이번 작품은 마도십병이라고 하지만 사실 십병은 별 상관 없는 것 같다. 까놓고 나오는게 천마조, 화룡성검, 군림전포, 성소지환, 추혼귀창, 칠현마금, 벽력뇌도가 전부인데 벽력뇌도는 별 비중도 없고 성소지환도 크게 놀라운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제목을 좀 더 섬세하게 지어주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4. 구천마제

깔끔하게 처리되는 적절한 수작. 던진 떡밥은 대부분 회수했고 과해질 수 있는 부분은 과하지 않게 처리했다. 예상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전개는 왕도를 걸었기에 진부할지언정 재미없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어줘야지, 하는 부분에서는 항상 그렇게 되었다는 점에서 어떤 사람은 뻔하다고 느끼며 글의 수준을 의심하겠지만 무협의 규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정해진 황금패턴이 실현되는 모습에서 큰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너무 성급한 전개가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며 주제와 문제해결법에 있어 구무협이 가지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소설의 가장 큰 약점일 것이다.

5. 천년무제

왕된 자의 기술은 관절기 뿐이고 권장박투는 계집아이의 호신술, 이라는 다나카 푸니에 공과 한마 유지로 공의 가르침이 있지만 역시 무협에서 남자의 길이라 함은 적수공권의 패도 아니련가! 과거 미화는 무협의 아름다움이고 늙은이가 고수인 것은 무림의 예의이니. 10권을 지나옴에도 불구하고 중장년의 마음은 호협의 혈기 뿐이라. 10권 마지막 두장을 찢어버리면 희대의 남자무협이 될 수 있었을 것이나 마지막 두장 때문에 격이 수작에서 평작이 되버렸구나. 낙향무사는 수작인데 이건 왜 이따위로 했을까.
이거 읽고 즐거운 인간은 무적세가도 한번 봐라.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지만 관점은 똑같다.
고생 해본 놈이 고생 안 한 놈보다 독해.

6. 염왕

와.. 이 시발놈이.. 14권 내내 이렇게 재밌게 써놓고 뭐? 이렇게 끝내놔? 14권치 엿이 한 방에 몰려오는 기분일세. 분명 수작에서 명작을 오가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졸작이 되네. 시발. 경천회인지 경천맹인지 그거 거사 실패 할 때부터 알아봤어. 몽중인 새끼 되지도 않게 뒤질 때부터 이거 뭔가 존나 이상한데. 라는 기분이 들긴 했다고. 와, 근데 뭐? 이따위로 끝내? 이게 대미냐 시팔놈아. 백야 개새끼... 진짜 끝내주는 무협을 보고 있다고 믿었는데. 죽어야할 때 죽어나는 게 현대적이군. 이라고 느끼면서 그래, 이정도로 죽어나줘야 리얼리티지. 라고 생각했던 내가 개새끼였다! 시팔시팔. 이새끼 딴 소설 찾아서 반드시 읽고 만다. 그리고 그 소설들도 이거랑 닮은 꼴이면 내가 단평이 아니라 독후감을 쓰고 성이 차지 않으면 평을 쓸 것이야!

7. 오홍련

그래서 공손세가는 뭐하는 자들인가. 다 읽고 나면 남는게 하나도 없다고 말은 해도, 보통 한 두개는 남기 마련인데 결말도 미친 것이 웃긴게 주인공 없어도 딱히 세상에 큰 일은 없을 것 같다. 주인공이 있을 이유가 없고 주인공은 자신의 무공 수위와 맞지 않은 삶과 선택을 한다는 점에서 이게 뭔가, 싶은 내용. 빠르게 잘 넘어가긴 하지만 이게 연재되고 있었다면 나는 굳이 뒷 부분이 굉장히 궁금하고 뭐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문피아도 다 된듯.

8. 신주오대세가

미덥잖지만 그럭저럭 잘 끝낸 이야기. 이름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작가인데 글빨은 영 후달리는 것이... 뭐랄까, 9단계로 나누면 중중이나 중상 정도 되는 작가같은 기분이 드는 게 확 몰입되는 곳도 없고 그렇다고 무릎을 탁 칠만한 부분도 없고 하지만 딱히 지적할 부분도 없다. 미적지근하게 진행되고 미적지근하게 끝나고 두리뭉실 지나가는 편. 결국 주인공은 개명도 안하고 절맥도 못 고치고 헌원 영감의 무기도 딱히 쓰는 것도 없고 풍운방도 별 필요 없음. 고력 하나 띄우려고 너무 많은 걸 내다버린데다가 고력조차 제대로 못 띄워서 이건 뭐... 차라리 고력을 주인공으로 하지 그랬나.

9. 천의무봉

대중소설이 뭔지 잘 아는 작가가 쓴 무협. 모자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게 넘치지도 않고. 사고 싶지는 않지만 뒷부분은 궁금한 무협은 무협지처럼 흘러가서 무협지처럼 끝난다. 엔딩이 석연찮은 기분은 들고 진행이 매끄럽지 않은 기분은 들지만 그런게 톱니바퀴처럼 모두 잘 맞물린다면 무협이 가진 거친 매력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물론 그 거친 맛이 대중소설의 매력이지만 명작이 될 수 없게 하는 한계이기에 아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크게 문제 되지는 않지만 찬찬히 되짚어보면 문제투성이인 게 오묘하다.

10. 십병귀

오. 간만에 이름을 기억해도 좋을만한 작가가 나온 것 같다. 오채지.. 오채지라. 이게 10년대 이후의 무협인가? 무언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승화되고 있는 기분은 드는 게 재밌네. 18반이라기 보다는 괴병을 사용하는 자에 대한 내용, 혹은 다병(多兵)에 관한 내용. 이런 느낌으로 무기 여러개 사용하는 무협 중에 괜찮은 수작이 있었는데, 읽은 건 분명한게 기록이 없다. 기록하기 전의 읽음 인듯. 기본적으로 무림을 지배하는 내용이고, 마지막도 조금만 더 다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어찌되건 무공은 제일 좋은 걸 익혀야 제맛.

11. 백가쟁패

백가쟁패라는 제목을 그닥 잘 살린 것 같지는 않고 6권부터 작가의 힘이 떨어지는게 느껴진다. 마지막은 처음부터 구상했던 것 같이 힘이 남아 있었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데 뒷심이 많이 부족하다. 주인공은 효왕, 혹은 효종과 장준걸, 혹은 장인걸인데 마지막을 읽고 나면 사실 주인공은 장인걸이 아닌 효왕이라는 기분마저 든다. 장인걸이 아닌 효왕에 초점을 두고 글을 진행했다면 굉장히 힘들지만 독특한, 하지만 인기는 없는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18대 교주까지 있음에도 3대 교주까지의 문답만을 실어놓은 것이 가장 아쉽다.

12. 비룡잠호


보니까 백가쟁패->비룡잠호->십병귀 순인 것 같은데, 제목 짓는 재주는 없는 것 같으니 그냥 십병귀 때처럼 노골적인 제목을 채택하는게 좋을 것 같다. 나오는 무공이 반복적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수련 방법이나 효과가 다르니 이름만 같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딱히 세계관이 연결되지는 않고 주인공의 성격이 천편일률 적이라는 점은 향후 전개에 가장 큰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제목이 왜 비룡잠호인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고작 그정도 이유로 제목을 저렇게 지을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떡밥은 해결치 아니하여 결과적으로 뒷심이 떨어지며 다 읽고 나서 뭐 어쩌라는거지? 라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