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독서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감상.

UVRT 2013. 12. 28. 10:24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저자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출판사
을유문화사 | 2010-05-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역사의 깊숙한 내부를 파고드는 탐색적 시선이 탁월한 21세기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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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독일어로 불행, 재난, 재앙, 시련, 방문, 가택 수색 뭐 그런 뜻인데 나름 잘 먹힌거 같네요. 방문으로 봐도 괜찮고. 그런데 이거 제목이 왜 저렇게 된거지. 배수아의 감각인건가.


헤세 식의 독일 소설보다 더 독일 소설 같은 분위기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집이 있고, 주인은 계속해서 바뀐다. 이건 집일 수도 있고 독일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이 흐름 속에서 정원사는 말이 없다. 주인들이 바뀌고 누군가 오고 무언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지만 정원도 바뀌고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누군가 죽고 누군가 살고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도착한다. 집은 뭘까. 시대는 여전히 땅 속에 잠자고 있고 모두들 풍토병처럼 시대를 앓는다.


독일의 근대를 관통하는 집의 일대기는 집이 지어지고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집이 철거되고나서 변한 것은 없다. 집이 지어지기 전부터 있던 자연은 집이 철거된 뒤에도 여전히 똑같았다. 자연은 제모습을 찾은 것일 뿐이다. 그저 집이 지어졌고 철거되었을 따름이다. 기억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쌓인다.


사람은 집보다 좀 더 활동적이다. 집을 지나가며 사람들은 살고 죽는다. 누군가 여기서 태어나고 누군가 여기서 유년을 보내고 누군가 여기서 노년을 보내고 누군가는 집에 왔다 집을 떠난다. 추억은 그렇게 짧게 빛난다.


추억도 기억도 지나가고 자연은 언제나 그러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기억을 더듬어 추억을 뿌리치고 사람을 생각한다. 집이 그곳에 있었는지는 사람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사람이기에 사람은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그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고 사람의 추억을 되새겨본다. 때때로 부정하고 때때로 환호한다. 그리고 빙하가 처음 이 호수를 만들던 세월만큼 다시 한번 세월이 휘돌면 우린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기억도 추억도 사라진다.


그래서 집은 그 곳에 없었던 것이 된다. 하지만 집은 있었다. 기억되지 않는 기억과 추억일지언정 집이 있었던 사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이 없었다. 한없이 고민하고 생각하자.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떠나고 몸서리치는 추억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지금 평생의 물음이 우리에게 던져진다.


집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