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독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감상.

UVRT 2013. 12. 8. 10:21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저자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1-05-1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11 일본서점대상 1위 베스트셀러 출간 직후 150만부 돌...
가격비교


추리에 입문하려는 사람이라면, 드라마로 밖에 추리를 접하지 못했다면 추리 소설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가 힘든 사람이라면 이 책은 최고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너무 Classic한 추리, Orthodox한 추리만 파고들었다면 이 책은 좋은 청량감을 선사해줄 것이다.


분위기는 산뜻하고 추리는 명쾌하다. 복잡한 이야기도 딱히 없고 인새의 교훈도 별로 없다. 사실 그런 건 별로 필요 없잖나. 식후 디저트처럼 즐기는 추리도 있어야 좋은 법이다. 적당한 만담에는 미소까지 지을 수 있다. 모든 대사와 단서는 정직하게 제공되고 낭비하지 않는 트릭은 자연스럽게 논리를 전개시키고 아귀를 맞춰나간다. 그리고 설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건조할 정도로 냉랭하게 진행되는 경제적 문장들 사이로 집사와 아가씨의 만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경부라는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마 이 소설은 어이없는 졸작으로 남았을 것이다. 유머러스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확고하게 구축하고 그 이미지를 표현조차 하지 않으며 적당히 등장만 시키면서 추리는 합리적으로 달려나간다. 그 기묘한 차이가 자아내는 독특한 분위기는 이야기를 허술하지 않고 산뜻하다고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아가씨나 경부나 다 우리 같다. 눈은 장식이고 허세부리고 머리는 잘 안 돌아가고 멍청하고 욕이나 먹고 화는 난다. 그리고 민망할 때가 더 많다. 자신만만할 때도 많지만. 그리고 설명을 듣다보면 내가 정말 멍청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3편 정도 이야기가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추리를 하려고 덤비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추리같은 머리 쓰는 일을 정말 못하는 나는 다 실패했다. 역시 난 논리가 없나보다. 너무 당연한 추리 같아 보이지만 살짝 꺾여들어가는 추리는 참신하게까지 느껴진다. 트릭에 장인의 숨결을 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괜찮은 변화구라 생각한다.


추리를 정말 좋아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너무 시시할지 모른다. 추리를 가장한 장난같은 소설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추리를 좋아해서 고도로 제련된 트릭 속에서 머리에 쥐나게 몰입하며 살아왔다면 이정도의 담백한 트릭에 어우러지는 유머러스한 캐릭터들은 아마 추리에 대해 다시 불꽃을 지필 수 있게 하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추리를 이제 좋아해볼까, 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은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짧은 단편들을 엮어 정해진 패턴을 가지고 간단하지만 귀여움이 느껴지는 트릭은 오히려 현실감과 몰입감을 높여준다. 하지만 추리를 적당히 즐기고 있다면 이 책은 최악이다. 추리는 애들 장난같고 캐릭터는 유치하다. 추리를 보며 머리가 부서지는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아직 당신 뇌는 더 고도의 트릭을 담을 공간이 남아있다. 그러니 그 공간이나 채워라. 잔뜩 조여놓은 뇌 주름을 풀어야 할 정도가 아니라면 더욱 위대하고 고아한 트릭을 찾아 떠나라.


하지만 당신이 이제 슬슬 뇌에 준 힘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제 트릭은 지쳤어, 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이 책은 다음 추리를 위한 추리소설이 될 것이다. 가끔은 이런 단순하지만 희극같은 추리소설을 보면서 자신을 환기하는 것도 좋다. 뛰기 위해 몸을 움츠리지만 그래도 추리와 떨어져 살 수는 없으니까 이런 추리같은 소설을 보자. 소설 속에 살짝 가미된 추리의 여운을 즐기며 추리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워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이 책이다.


그리고 당신이 추리는 뭔지 알지도 못하지만 이제 추리라는 걸 한 번 슬슬 봐 볼까? 라고 생각하면서 나처럼 논리력도 허섭하고, 추리도 잘 못하는 장식눈을 단 멍청이라면 역시 이 책이다. 그래서 난 자연스럽게 지금 다음 권을 살 준비를 하고 있다. 재밌거든.